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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틈없는 직학생의 근황, 일상의 단편

by 아몬드봉BONG 2021. 2. 10.

 

1.
마감을 하는 직장인들이라면 80%가 월초 또는 월말에 정신이 없다. 나도 마찬가지. 월초, 일주일간 한 달간 열심히 일했던 실적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이 모든 마감을 끝내고 한숨 좀 돌리나 싶었는데 이제는 또 출장이다. 역마살이 단단히 낀 게 분명하다. 월요일부터 경기도로 가야 해서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 하루만 해도 시원찮을 판에 3일을 가야 하다니....(지역 세 곳을 배정받았다)  뭐 1호선 여행자가 되는 건 나쁠 건 없었다. 하지만 이틀 연속 왕복 4시간 출퇴근은 얘기가 달라진다...

 

2.
나는 예전부터 일복이 넘쳐났다. 이상하게도 가는 팀마다 바쁘고 가는 곳마다 할 일이 넘쳐났다. 조용한 팀에 가도 새로운 일이 발생하거나 매출이 증가되었다. 나를 찾고 필요로 한다는 것이 참 좋기도 하지만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더 많았다.
과거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행복을 만끽했던 때가 있었다. 휴대폰을 분실한 슬픔보다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기쁨과 연락을 받지 않아도 되는 합리적 변명이 생긴 게 더 기뻤다. 이참에 폰 없이 살까?라는 고민까지 했을 정도니까. 휴가는 항상 조용한 곳으로 갔다.(그마저도 2박 3일 이상 허락되지 않았다. 세상에!!! ) 사람들과 말을 하고 전화를 하고 메일에 답장해야 하는 게 지쳤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않았고 아무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하루 전화가 100통이 넘게 걸려오고 쏟아지는 메일이 없는 세상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바쁜 생활에도 장점은 있었다. 내가 항상 말하지 않는가, 모든 이면에는 음과 양이 있고 그늘 뒤에는 빛이 있다. 막말로 똥밭에도 장점이 없을 수는 없다. 내가 뒹군 그 똥밭은 시간이 빨리 간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루하루가 그냥 먹고 자고의 연속이었다. 정말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사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기억이 잘나면서도 안 난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저 구절로 밖에 표현되지 않는다. 고통의 기억은 잘 나는데, 무언가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잊어버린 걸까.

끊임없이 밀려오는 메일을 하루하루 쳐내다 보면 고개를 들고 멀리 쳐다볼 시간도, 무언가를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갑자기 바빠지니 과거가 떠올랐다. 그냥 그랬다고....

 

 

 

3. 그래도 하늘은 파랗다. 내 입술도 함께 새파래 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영하 6도, 추워도 너무 추운데 야외에서 진행된 재고조사는 끝날 생각이 없었다. 물론 끝내려면 내가 열심히 해야겠지만 물리적 시간이란 게 있어서 불가능했다. 도대체 몇 개를 세고 있는지 모르겠다. 손가락도 얼고 발가락도 얼고 내 뇌도 얼기 시작했다. 해가 늬웃늬웃 기울기 시작한 6시쯤, 겨우 야외활동을 끝을 냈다.

 

4. 집에 도착하니 8시가 넘었다. 오랜만에 저녁을 간단히 해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싱크대를 봤다. 싱크대 위 컵 하나가 상태가 아주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었다. 내가 보고싶었는지 어둠의 꽃을 피울랑 말랑한다. 내가 꽃 좋아하는거 어찌알고..? 하지만 어둠의 꽃은 나와 어울리지 않으므로 저 세상으로 보내주었다. 설거지를 절! 대! 반나절 이상 미루는 성격이 아닌데, 정말 바빴나 보다. 아! 대학원에 가면 더 바쁠 텐데....

 

5. 2월은 28일까지다. 2월달 남은 시간을 쪼개서 수강신청도 하고 등록금을 납부하고 나면 새로운 한 학기가 시작될 것이다. 그때도 이렇게 바쁠까? 이번 학기는 몇 학점을 들어야 할까, 신입생은 몇 명이 들어왔을까? 이렇게 코로나로 1년이 가버리는 건가? 공부는 과연 소용있는걸까? 방학 동안 책도 더 열심히 읽고 공부도 했어야 했는데 난 뭘 한 걸까??

 

6. 내일은 출근을 해야 한다. 나의 이런 복잡하고도 단순한 고민을 뒤로하고 또 출근은 나를 반겨준다.